인천아 너는 엇더한 도시
전시소개
1924년 개벽에 실린 칼럼은 개항 이후 일제강점기로 이어진 인천 사람들의 고달픈 삶을 담고 있다. 이어 산업화 시기, 인천의 한 공장에서 일했던 노동자의 일기는 도시의 성장 이면에 형성된 삶의 풍경을 전한다. 오늘날의 개인 일상 기록물은 가족의 형성과 세대의 변화를 통해 인천이라는 도시가 축적해 온 또 다른 시간을 보여준다.
“인천아 너는 과연 어떠한 도시인가?”
우리는 1924년부터 시작된 이 오래된 질문을 다시금 꺼내어 시대별 인천의 모습을 살핀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인천을 되돌아본다. 이번 전시를 통해 인천이라는 도시의 공간적 의미와 이곳 사람들의 삶을 되새겨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개항 이후, 인천 사람들
과거 인천은 밀려드는 신식 문물과 제도 속에 빠르게 발전했다. 하지만 1924년 개벽 제48호와 제50호의 칼럼 「인천아 너는 엇더한 도시」는 철로 너머 북쪽 “울퉁불퉁한 산비탈과 게딱지 같은 집”에 모여 사는 조선인 마을의 현실과 이들의 생계를 현실감 있게 기록했다. 당시 조선인들의 고단한 일상은 개항과 근대화란 단어에 가려 주목받지 못한 도시의 그림자로 당시 인천이 지닌 또 하나의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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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보기에는 북쪽 마을도 제법 번성해 보이지만, 사실은 새로 생긴 가난한 마을들이다.
그러나 울퉁불퉁한 산비탈과 게딱지 같은 집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그들의 궁핍한 모습을 보라.
정이 있다면 눈물이 날 것이고, 눈물이 있다면 피땀 섞인 슬픔이 어찌 없겠는가.
3만 명이나 사는데 공립보통학교가 1곳뿐이라는 사실은 너무나 서운하다.
그나마 남의 도움으로 세워진 사립학교들마저 없었다면 큰일 날 뻔했다. 그러지 말아라.
남의 말과 글로 우리를 똑같이 만들려 하는 세상이지만, 우리도 남만 못하지 않은 분명한 사람이다.
칼럼 「인천아 너는 엇더한 도시」 중
일하는 도시 인천과 도시 노동자
산업화 시기 인천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모여든 전국 각지의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천전기와 인천제철, 인천유리 등 1960~1970년대 한국 경제를 이끌던 대표 기업들이 자리한 지역으로, 곧 도시 노동자들의 생활 터전이기도 했다. 노동 현장과 일상을 기록한 일기, 공장 건물과 직원들을 촬영한 사진, 노동자가 직접 사용한 헬멧과 신분증, 단골 식당의 물건 등은 산업 성장의 주체였던 개인들의 구체적인 삶을 전한다. 이러한 기록은 인천을 ‘일하는 도시’이자 ‘정착의 공간’으로 인식하게 하며, 산업화의 시간을 살아낸 사람들의 시선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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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일기, 1956~197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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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하던 시간은 닥쳐왔다. 회사 정문 앞에는 종업원 가족들이 10월분 월급을 기다리고 있다.
때가 김장철이다 보니 아낙네들이 마음 졸이며 기다리다 못해, 오후에라도 김장거리를 사들이겠다는 속셈이다.
1964년 11월 26일 일기 중
일상이 된 도시, 인천
한 세시가 넘는 시간 동안 인천 사람들의 이주는 끊임없이 반복됐다. 그러나 도시가 점차 안정되면서 인구의 이동은 줄어들고, 정착의 시간이 이어졌다. 특히 1960~1970년대 일자리를 찾아 이주해 온 이들이 가정을 이루고, 그 자녀들이 다시 가족을 형성하면서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였다. 가족의 형성과 아이들의 성장, 일상의 정착은 사진과 영상이란 미디어 매체를 통해 기록되고 공유되었다. 이러한 일상 기록물은 인천을 더 이상 ‘이동의 도시’가 아닌, 사람들이 살아가며 시간을 쌓아온 일상의 도시로 바라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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