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우리 꽃
전시소개
인천 동구청이 운영하는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은 열두 번째 기획전시인 ‘생활 속의 우리 꽃’을 통해 집안 곳곳 숨어있는 꽃을 찬찬히 발견해보는 전시를 마련하였다.
꽃은 집안의 화목을 기원하는 전통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동시에 집안을 장식하고자 하는 욕구를 표현한다. 국화, 모란, 난초와 같이 전통성을 띤 꽃은 현대까지 사랑받았으며 전쟁 이후에는 서민의 삶에 친숙한 민들레, 붓꽃, 등나무꽃 등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특히 근대 이후 가장 유행했던 장미는 식기에서부터 수예,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꽃들은 상품이나 상표, 포장지 등으로 도안화되었다.
불과 백 년이 되지 않은 기간 동안 꽃문양을 포함한 생활용품에는 다양한 시대 흐름이 나타난다. 꽃을 도안화한 상표와 포장지는 더욱 화려해지고 다양한 종류의 꽃문양을 담은 생활자기가 나타났지만 혼수품으로 꽃을 곱게 수놓았던 횃댓보 등은 사라져갔다. 이번 전시에서는 집안에서 쓰던 식기, 수예품, 공산품에서부터 창문 밖 창살에 이르기까지 140점이 넘는 생활용품을 한 자리에 모았다. 쉽게 볼 수 있는 집안 밖의 물품들을 찬찬히 살펴보고 근현대 서민의 생활상을 이해하고자 한다.
생활용품에 꽃을 채우다
꽃으로 장식된 생활용품은 집 안팎으로 다양하게 존재한다. 전통적으로 사랑받아 온 장미와 모란, 국화를 포함해 목화, 민들레, 붓꽃 등 생활용품을 채우는 꽃의 종류도 각양각색이다. 시대마다 다르게 표현되는 꽃의 유행은 단순한 장식의 의미를 넘어 당대의 문화를 읽어내는 단서로써 그 가치를 방증한다.

보온물통, 바닥지름 17㎝ X 높이 31㎝
- 장미와 국화
장미와 국화는 일찍부터 사랑받았던 꽃이다. 조선 세조 때 원예서인 양화소록(養花小錄)에서는 장미를 가리켜 자태가 아리땁고 아담하다고 평하였다. 국화는 사군자의 하나로 문인들은 늦가을에 피는 국화를 보고 고고한 절개의 군자에 대비하였으며 시와 그림의 소재 혹은 도자기, 공예품 등의 문양으로 자주 쓰였다. 현대에서도 장미와 국화 문양은 다양한 생활용품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백항아리, 정경운 기증
- 모란
모란은 예부터 부귀와 영화의 상징으로 여겨져 왕실의 복식뿐만 아니라 일반 가정의 병풍, 가구 등의 중요 장식으로 사용됐다. 집안을 장식하기 위한 다양한 생활용품에서도 모란무늬를 찾을 수 있다.

코티분, 원지름 8.7㎝ X 높이 3.8㎝
- 목화
코티분은 비싼 가격에도 많은 여성들의 화장대에 꼭 자리해 있었던 추억의 물건이다. 일제강점기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왔으며 1959년에는 태평양(현 아모레퍼시픽)이 프랑스 코티사와 제휴하였다. 목화를 디자인하여 만든 독특한 통과 특유의 향으로 국내에서 많은 인기를 끌었다.
- 무궁화
근대기부터 장미, 모란, 무궁화 등 우리에게 친숙한 꽃들은 회사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상표나 포장지에 다양하게 나타났다. 이 중 무궁화는 20세기 초 나라꽃으로서 애국가의 후렴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구절이 들어갈 만큼 크게 각광 받았다.
생활자기에서 꽃을 표현하다
- 1940~1950년대 생활자기 역사
일제강점기 말엽부터 밀양의 밀양도자기(1937년 창업)를 시작으로 목포의 행남사(1942년 창업, 현 행남자기)와 청주의 충북제도사(1943년 창업, 현 한국도자기), 인천의 중앙도자회사(1943년 창업, 1972년 폐업) 등 크고 작은 조선인 주도의 도자 회사가 만들어졌다. 1955년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전국의 도자 공장은 총 46개가 존재하며 내수를 위한 생산이 활발하였다고 한다.



- 생활자기의 문양과 장미꽃
1940~1950년대에는 대접과 발에 간단한 수복문(壽福文)을 새기거나 접시와 잔에 동식물을 그리는 것이 유행하였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도자 회사들이 대량생산을 위한 선진기술의 도입을 위해 몇 년간 노력하였고, 그 결과 1950년대 후반에 국내시장이 안정화되자 이어서 해외시장으로의 수출사업을 계획했다. 특히 1960년대에는 양식기의 홈 세트와 티-세트가 유행하였다. 이들 그릇에는 전사지를 이용한 꽃문양이 새겨졌는데, 주로 영국 등에서 수입해 온 것이다. 다만 수입경로가 비슷했기 때문인지 공장마다 유사하거나 동일한 디자인의 그릇을 생산하기도 하였다. 또한 1960~1970년대에는 장미 문양이 유행하여 한국도자기, 행남사, 밀양도자기, 중앙도자기 등 모두 비슷한 장미 문양의 접시를 생산, 판매하였다.
- 인천의 중앙도자기
중앙도자기는 1943년에 설립하여 1972년까지 30년간 존재한 인천의 도자 회사이다. 최초 명칭은 중앙도자회사(中央陶瓷會社)였는데, 1960년대부터 홍콩과 유럽으로 타일과 모자이크, 홈 세트 등을 생산하여 수출하였다. 특히 ‘홍장미’라 불리는 홈 세트 식기는 오랫동안 주부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1972년 부도가 난 후에는 진흥요업이 회사를 인수하였다.

다양한 디자인의 중앙도자기 회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