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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이야기, 신의주에서 인천까지

2011_포스터.jpg 이미지

전시명
나무이야기, 신의주에서 인천까지
전시장소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 기획전시실
전시기간
2011-06-10 ~ 2011-12-31
담당부서
박물관팀

전시소개

이제는 잊혀졌다고 생각될 때가 있다. 가까운 옛날, 근현대의 경험은 서가 한 켠 놓여진 빛바랜 책 속 기록처럼 사람들의 기억 속에 어느새 사라져간다. 인천 동구청이 운영하는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은 나무를 주인공으로 지역사의 숨은 이야기기를 발굴한 다섯 번째 특별전시를 개최한다.

전시는 신의주에서 인천으로, 일제 강점기부터 한국전쟁 60·70년대까지 시공간을 넘나들며 진행된다. 100년 전, 압록강 상류의 산림에서 벌목된 나무들은 강을 따라 뗏목으로 신의주까지 운송된 후 인천으로 이동되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인천 동구에 위치하였던 성냥공장, 대성목재, 똥마당 등 나무에 관한 기억을 되살리며, 그대로 잊혀지기에는 아름답고 치열했던 사람들의 생생한 삶을 회고하고자 한다.

 

 

100년 전, 나무 옮겨지다.

앞록강 상류의 소나무가 무성한 산림에 벌목된 나무가 목재제재소로 옮겨졌는데 이동수단인 뗏목이 특히 유명하여 1930년대에는 압록강 뗏목의 장관을 대한팔경의 하나로 꼽고 노래를 만들기도 하였다.

 

압록강이 흐르는 신의주

신의주는 평안북도 압록강 하류에 위치한 곳으로 1906년 경의선이 개통되면서 의주읍 대신 새롭게 떠오른 계획도시이다. 1914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부로 지정되었으며 자원이 풍부하여 일찍부터 공업이 발달하였다.

 

신의주에서 인천까지 근대교통

제물포가 개항한 이후 인천은 면포, , 석유 등을 수입했다. 이와 함께 신의주, 만주 등 압록강 산림에는 벌목된 나무들도 수입되었는데 1930년대 인천항을 통해 수입된 목재는 연간 70만 톤에 달하였다. 이미 인천에서 신의주까지 철도교통이 연결되어있었으나 철도운임이 고가였기 때문에 부피가 큰 목재는 여전히 바다로 수입 될 수밖에 없었다.

 

 

근대 인천과 나무

일제 시대부터 인천에는 편리한 교통과 풍부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공장들이 세워졌다. 이 중 나무를 이용했던 대표적인 공장으로 금곡동에 있었던 조선인촌주식회사朝鮮燐寸株式會社를 들 수 있다. 성냥개비를 만들기 위해 신의주에서 벌목된 나무를 가공하였는데 연간 7만 상자를 생산하였다. 또한 항구에 가까웠던 만석동에는 나무를 가공하여 합판을 만드는 목재공장과 조선소 등이 들어섰다.

 

대성목재

1936년 설립된 대성목재는 목재를 가공하여 합판을 만드는 회사로 활발한 사업을 펼치며 60-70년대 인천의 대표적인 향토기업으로 자리매김하였다.만석동 38번지 일대에 터를 잡았는데 저목장은 만석부두인 47번지에 위치하고 있었다.

 

 

사진2. 전시대표유물

 

나무와 함께한 서민들의 삶

전쟁 이후 황폐해진 국토를 재건하기 위해 나무는 꼭 필요한 자원이었다. 전주(電柱),침목, 조선, 건축, 난방, 등 여러목적으로 나무가 필요했으나 38선 이북의 산림을 이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동남아시아 등에서 나무를 수입하기 시작하였다.

 

괭이부리마을

6.25 이후 피난민들은 일자리를 찾아 판자촌인 괭이부리마을 형성하였다. 당시 똥마당이라 불리던 대성목재의 저목장에서 나무껍질을 떼어내 연료로 사용하기도 하였으며 이를 말려 장터에 내다 팔면서 생활을 영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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